마두1동은 마두2동의 동쪽과 북쪽에 자리한다. 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진 백마마을과 함께 정발산 기슭 단독주택들과 경의선 부근 빌라형 아파트와 저층의 상가, 주택으로 이루어져 있는 정발 마을이 있다.

백마마을은 백마역의 서쪽에 있는 고층의 아파트 단지인데, 백석동과 마두동의 사이에 있어 두 마을이름에서 한글자 씩을 따 백마가 되었다.

정발마을은 정발산 주변에 있는 공원과 나무 , 집이 어우러진 고급주택가 마을로 한국의 베버리 힐스로 통한다. 경의선 부근의 마을도 학교, 상가가 어우러진 살기 좋은 마을이다.

마두동은 90년대 초반 일산에 신도시가 조성되기 이전에 대대적인 문화재 조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단국대의 한창균 교수팀이 현 정발마을 암센터 건너편 지역에서 선사시대의 주먹도끼를 발견했다.

마두1동은 평야와 산이 만나는 구릉지에 위치해 고대로부터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이 지역은 고대에 백제, 고구려, 신라의 순으로 지배하였으며 고려시대에는 고봉, 조선시대에는 고양군 중면 저전 이패리에 오랜 기간 속해 있다가 다시 고양군 일산읍 마두리를 거쳐 현재 고양시 일산구 마두1동이 된 것이다..

1990년대 초반 이곳이 신도시에 편입되기 전 까지 이곳은 설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집성촌을 이루어 살던 설촌 마을과, 최씨 성을 가진 주민들이 살던 냉천 마을 ,그리고 백마역 부근에 대규모로 자리했던 학사 주점이 있었다.

냉천 마을은 정발산 밤가시 고개의 아랫마을로, 마을에 차가운 샘물이 있어 붙여진 마을 이름이었다. 이 샘물은 인근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약수였으나 도시 개발의 과정에서 땅에 묻히고 말았다.

백마역 부근은 1980년대 초반부터 '화사랑'을 시작으로 들어선 수 십 여 개의 학사주점이 들어선 것으로도 유명했다. 당시 많은 대학생과 젊은이들이 이곳 경의선 기차를 이용하여 백마에 내려와 수많은 추억을 남겼고 이들 주점들은 그후 여러 곳으로 흩어졌으나 일부는 풍동의 일명 애니골로 이전했다.

백마 기차역은 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일산의 밤가시 초가와 함께 유일하게 보존된 건축물로, 신도시개발에 대해 강한 반대 의견을 가진 주민들이 정부에 대한 반감의 표시로 연일 시위가 이어져 당시 중심가인 백마역이 대규모의 반대 시위장소로 이용되었다.

이곳 신도시 지역의 교육 중심은 백마초교와 일산역 옆의 일산 초등학교였다. 백마교는 예전부터 백석리. 마두리, 풍리 주민들이 다니던 교육기관으로 현재의 신도시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학교다. 지금도 백마마을의 한가운데에 백마초등학교가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

저작권자 © 고양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