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치매노인 수용시설인 가좌동의 ‘참 좋은 집’이 지역주민들의 등쌀에 밀려 결국 보금자리를 잃게 됐다는 소식 (본보 11월 19일자보도)은 불우노인 복지문제와 관련한 우리 사회의 양면성과 이중성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한 사례로 보여 진다.  이번 사태의 전말에서 그 것이 읽혀진다.

가좌동 주민들의 이전요구의 논리를 보면 언뜻, 불우노인들에 대해 사려 깊은 배려를 하고 있다는 생각도 없잖아 있다.  한마디로 장애노인들의 거주지로서는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인근 양계장에서 나는 악취와 좁은 도로, 차들의 잦은 왕래, 그리고 산책로 미비 등이 노인 거주지로서는 맞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이 좋다는 취지의 주장이다.  그리고 시설 이전에 따른 지원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고 한다.  ‘참 좋은 집’의 불우노인들을 보는 따뜻한 한 시각이라고 일견 여겨진다.

그러나 주민들 이전요구의 본질적인 부분은 어떤 것인가.  한마디로 ‘참 좋은 집’을 혐오시설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대로 전원주택지인 이 곳에, 혐오시설이 있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고, 땅값과 집값이 떨어질 것이 우려되니 나가달라는 것이다.  노인들 처지와는 아랑곳없이 그들만의 터전을 지키겠다는 냉랭한 시각이다.  한마디로 혐오시설을 자기들의 주위에 두지 않겠다는 이른바 ‘님비 (NIMBY)' 증후군의 한 단면에 다름 아니다.

주민들의 주장에는 이 두 양면적인 시각이 혼재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님비’의 주장이 핵심적인 것이고, 그 것의 힘에 의해 결국 ‘참 좋은 집’이 보금자리를 잃게 된 것이 이번 사태의 본질이다.  노인들이 살 수 없다는 지역에 그들은 살 수가 있는지 문득 반문하고 싶다.

이번 사태 해결(?)의 한 빌미가 된 고양시의 지원금 문제도 참 씁쓸함을 남긴다.  ‘참 좋은 집’은 주민들의 이전요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더 버티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주한지 20일 만에 서둘러 짐을 싸게 된 것은 바로 고양시에서 받고 있는 지원금 때문이었다. 

주민들은 내년 7월까지 법적신고시설로의 전환을 전제로 ‘참 좋은 집’에 대해 지원금을 주고 있는 고양시로 하여금 지원중단을 강하게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푼의 돈이 아까운 ‘참 좋은 집’으로서는 달리 선택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만이 그나마 지원금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이었다는 얘기다.  불우노인을 돕기 위한 행정당국의 지원금이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보금자리를 잃게 만든 압박용이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참 좋은 집’은 다시 법곶동의 낡고 협소했던 이전 거주지로 옮겨갔다.  그들의 겨울나기는 참으로 힘들고 어려울 것이다.  늙고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이 못사는 사회는 궁극적으로 우리들의 멀지 않은 자화상들이 닮긴 곳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들이 이들을 감싸고 돌보지 않으면, 결국 우리들도 그런 처지에 놓여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참 좋은 집’ 사태는 이 것으로 끝이 아닐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조치가 뒤따라야할 것이다.  마침 이 소식을 접한 많은 고양시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답지하고 있다.  한 가닥 빛이 되었으면 한다.  불우노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그림자가 있으면 안 된다.  따뜻하고 밝은 빛이 감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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