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투자, 운영방침에 불만 불거져

덕양구 관산동에 있는 벽제고가 내년부터는 고양외고로 바뀌고 전국의 중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면서 당장 이 지역 학생들은 진학할 고등학교가 사라졌다. 이에 지역 3개 초등학교 학부모와 지역주민들은 ‘특수목적고 전환 반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구성하고 벽제고등학교의 고양외고 전환 무효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간 학교에 대해 지역주민들이 가져왔던 불만이 불거지고 있다. 지역주민들은 “아이들이 가야 할 고등학교가 없어졌다는 사실보다는 그 동안 재단이 보여온 독단적인 학교운영과 부실한 투자에 대한 불만이 더 높다”고 말한다.
그간 벽제지역 유일한 중·고등학교였으면서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아 교육의 질이 떨어졌는데 이에 대한 해명과 대안도 없이 외고로 전환을 했다는 주장이다.

벽제고등학교가 외고로 전환하게 된 데는 지역학생들이 벽제고를 기피해 운영상의 어려움이 컸던 것에 기인한다. 이에 벽제고 재단측은 외고를 적극적인 타개책으로 마련한 것이 사실.
그러나 학생들이 벽제고 진학을 기피한 원인에 대해 지역주민들과 재단측의 입장은 확연히 다르다.

99년 재단전입금 5백만원

주민들은 “재단측에서는 학교에 거의 투자를 하지 않아 교육의 질이 떨어졌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벽제중·고등학교의 강성화 교장은 “그 동안 학교발전을 위해 재단은 많은 시설투자를 해 왔다”고 말하고 “오히려 우수한 아이들을 서울이나 다른 지역으로 보내 학교에 투자를 하지 않은 쪽은 지역주민들”이라고 답변했다.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벽제고의 재정자립도와 재단전입금은 다른 사립고의 평균에 비해 낮아 그간 재단이 투자를 해오지 않았다는 지역주민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지난 99년 벽제고의 전체 운영예산은 5억9천여억원으로 이중 자체수입은 3억5천억원에 불과, 교육비 특별회계가 2억3천여억원으로 고양시에 있는 세원고나 일산대진고에 비해 예산규모면에서 크게 뒤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벽제고의 재단 전입금은 99년 5백만원에 불과해 대진고의 4천5백만원의 12% 수준. 재정자립도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59%에 불과해 세원고(70%)와 일산대진고(64%)에 비해 낮았으며 경기도 사립고등학교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표>고양시 사립고 연도별 재단전입금/재정자립도 (단위: 천원/%)
학교 96 97 98 99
벽제고 3,000/39.9 0/40.3 12,200/41.8 5,000/59.2
대진고 74,000/97.3 37.408/96.7 42.845/85.1 450,850/64.3
<자료 : 경기도 사립학교연합회>

벽제고의 외부의 재정지원 현황을 보면 재정결함은 2억5천5백여만원으로 급식시설비 1억6천만원이 예산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이밖에 교육환경개선사업(4천7백만원), 중식지원사업(4백3십만원), 교육정보화(1천2백5십만원), 소프트웨어구입비(1백2십만원) 등에 대해 지원됐다.

한편 경기도의 과천외고와 안양외고의 경우 자체수입만으로 학교예산을 운영하고 있어 재정자립도가 99%에 달한다. 외고라는 특수목적고의 경우 수업료 등 자체수입만으로 재단전입금 없이 학교운영이 가능한 것. 관산동의 강 모씨는 “외고는 수업료를 자율적으로 책정할 수 있기 때문에 고양외고도 수익을 늘리기 위해 특목고로 전환한 것이라고 주민들은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교운영에 학부모 의사 배제

주민들이 외고로의 전환을 반대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학교운영에 지역주민들을 철저히 배제해 왔다는 것. 주민들은 “지금의 이사장이 학교를 인수하면서 학교운영은 오직 재단측에 의해서만 이루어져 학부모들의 의견통로가 막혀왔다”고 한다.
최실경 시의원은 “주민이 땅을 기부하고 지원금 받아 건물을 세운 학교인데다 재단에서 투자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간 마치 사유재산처럼 재단측이 비민주적인 운영을 해왔다”고 말했다.

99년 말 전국 초·중·고교 818개 학교법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감자료에 따르면 학교 설립자의 친인척이 이사로 있는 초·중·고교는 550개(67.2%)로 나타났다. 또 친인척에게 이사장이 대물림된 재단도 463개(56.6%)로 드러났다.
현재 벽제중·고등학교의 재단은 ‘지선학원’이며 이사장은 강신경 목사다. 지선학원은 안산공대 등 3개의 대학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사장의 아들이 학장으로 있다. 또한 벽제중·고교의 교장 강성화씨는 이사장의 딸.
부패사학척결을 위한 국민운동본부가 99년 전국 540개 사립 중·고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158개교가 설립자나 재단이사장의 친인척을 교장으로 임명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러한 행태가 “재단을 공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사유재산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학교운영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재단을 견제해야 할 학운위의 구성과 운영에 있어서도 지난 해 벽제고는 교장과 학교운영위원들간의 잦은 마찰로 운영위원장 등 몇몇 위원이 사퇴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운영위원장을 사퇴한 이학재씨(나우밸브 대표)는“사학의 자율성은 재단의 자율성이 아니라 교육주체인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민주적 운영이 법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확보되고, 그 때에만 올바른 교육이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덧붙여 “학교에 투자도 하지 않고 재정의 부족한 부분은 모두 국가에서 지원받고 있는 사립학교가 재단의 자율성만을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전했다.

외고 전환 도덕적 비난 거세

재단측의 학교운영의 독단과 교육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
올해 초 국회 사립학교법개정 작업에도 참여한 민주당의 모 교육전문의원은 “사립학교에 대한 재단의 소유권 개념은 일반적 재화에 대한 소유권과는 달라야 한다. 이미 사립학교는 교육의 공적 교육체계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는 하나의 ‘준 공교육 체제’ 다. 따라서 그만큼 기본적인 공공성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최실경 시의원도 “재단이 학교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고 “지역주민이 낸 세금과 학비로 운영돼는 학교의 주인은 바로 학부모를 비롯한 주민”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최 의원은 “학교운영의 투명성이 보장돼지 못하고 재단의 투자가 없는 이상 원래 취지인 ‘국제화에 걸맞는 인재 양성’보다는 명문대를 위한 ‘입시학원’으로 전락하고 재단의 비민주적 운영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교가 특목고 전환의 요건을 갖추었고 교육청의 승인이 났다면 이 문제로 지역주민의 도덕적인 비난은 받을지언정 현행법상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벽제고의 문제가 재단의 빈약한 투자와 독단적인 학교운영에 있다면 외고로 전환된 후에도 불씨는 계속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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