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행신1동

행신1동은 서울에서 승전로를 따라 들어오면 행신 3동과 행신2동 사이에  있다.
본래 행신동 지역은 모두 1개의 마을 이였으나  1990년대 초반에 이루어진 행신 택지 개발 사업 등으로 인구가 급속히 늘어나 현재는 모두 3개의 행정동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 마을은 크게 행신동에서 원당역, 의정부로 이어지는 충장로를 경계로 기존의 연립아파트 지역과 고층의 아파트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연립마을 일대는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마을이며 나머지 고층아파트는 대부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섰다.

1755년 쓰여진 고양군지를 보면  행신동에는 모두 3개의 마을이 있었다. 먼저 지금의 행신3동에 해당하는 마을로 가라산리가 있다. 이 곳에는 모두 42호가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고 행신2동에 속하는 서행신리에는 34호가,  행신1동에 속하는 동행신리에는 모두 24호가 표기되어 있다.  동행신리에는 축근리가 부속되어 있는 마을로 나오는데 현재의 행신1동과 3동의 사이로 여겨진다.

이후의 행정구역에 따른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고양군 구지도면 동행신리에서-고양군 지도면 행신리-고양군 지도읍 행신리-고양시 덕양구 행신1동에 이르고 있다. 이곳 행신1동과 많은 지역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행주동이다. 대부분이 서쪽지역인데 현재의 행신도서관 부근이 되는 지역이다.

이 도서관 부근과 이 일대가 오랜 기간 나주 정씨의 선산 지역인데 이곳에서 1980년대 중반에 수많은 의류(衣類) 문화유물이 발굴되었다. 주로 무덤속에서 나온 저고리, 철릭 등의 옷이며 무덤 밖에 있던 문인석(文人石)을 비롯한 석물들도 매우 뛰어난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이중 대표적인 인물이 정응두 선생이다.
 

행신1동 지역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일명 송장(松長)고개라 부르기도 하였다 . 현재의 신능초교에서  토당근린공원 방향에 해당하는 곳인데 이곳에 많은 소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현재는 이 지역에서 예전에 울창했던 소나무는  볼 수 없다. 이 고개는 행신동 사람들이 예전에 능곡의 장(場)이나 기차를 이용할 때 사용하던 교통의 요지였으나 요즈음은 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조차 어렵게 그 인근의 모습이 크게 바뀌었다.

 1990년대 초반  행신1동 지역에 개발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많은 집들은 헐리고 산이 깎이어 밭과 논을 메꾸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무덤이 발굴되었는데 특히 주변의 붉은 황토가 매우 인상적 이였다. 이 일대의 산을 파낼 때 바위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해발 30-40m 가량의 야산에서는 고운 붉은 색의 황토가 나와 이 지역의 지질을 확인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곳 행신1동에는 흔히 행신 주공이라 불리는 아파트 단지가 있었다. 현재는 이곳에 대규모의 아파트가 건설되고 있는데 인근의 주민들은 교통의 혼잡등을 우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화정에 비해 덜 발전된 지역 상권이 살아나길 기대하기도 한다.
인근에 고속철의 출발역인 행신역의 활성화와 함께 이곳 행신1동의 모든 주민들이 오랜 기간 이곳 행신1동 살면서 행복하고 신나게 사는 마을이 되길 바란다.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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