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고 이낭희 선생님

학창시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때 문학을 꿈꾸지 않은 이가 몇이나 있을까. 수줍게 긁적거리던 습작품들은 지난 시절 유물이 되어버렸다. 혼란스럽고 정리되지 않은 문학적 사유를 올바르게 이끌어주고 지도해  주시던 선생님은 얼마나 존경하고 싶은 분이었던지. 일산 백신고 2학년 담임 이낭희 선생님(38)은 그런 분이 틀림 없을 것 같다.

회사 1톤 트럭 /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오늘은 열 시가 되어도 / 트럭이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했더니 / 아버지는 교문 옆에서 / 떨리는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 아버지가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오직 자식 둘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 독한 술을 한 잔 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 혼자 뭇다”
아버지 눈은 / 구슬피 달빛을 흘립니다 / 술에 취했는지 괴로움에 취했는지 / 팔짱 끼고 있는 아버지가 / 나를 잡고 흔들립니다.

‘이낭희 산책 문학여행(http://ipcp.edunet4u.net/~nanghee)’ 홈페이지를 통해 고3 남학생이 보내온 ‘아버지가 흔들립니다’라는 시다. 지난 2000년, 교사로는 처음으로 홈페이지를 개설해 직접 창작 지도에 나선 이교사는 전국의 학생들로부터 하루에 15~20통씩 시, 수필 등이 올라오면  일일이 답글을 쓰느라 새벽 2, 3시에 잘 때도 많지만 아이들의 문학열정이 느껴져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아버지가 흔들립니다’라는 시도 그 중 하나다. "사실적 묘사, 대화에서 배어나는 눈물겨운 삶의 향기가 감동을 주는 이 시는 보는이의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라고 이교사는 평한다.
홈페이지에 올려지는 작품은 월별로 두편을 선정, 월요일자 한겨레신문 교육란 ‘글쓰기’에 게재 되기도 한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을 꿈꾸어 왔다는 이교사는 교육계에서 문학 선생님으로 통한다.  책에 나온 글을 선생님이 읽고 설명하는 것을 받아쓰는 여느 국어시간과 전혀 다르게 수업하기 때문이다. 이교사의 국어수업, 특히 문학교육의 특징은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번째는 ‘감성 체험 수업’으로 논리에 강하나 감성에 취약한 요즘 아이들의 감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생활속에서 만날 수 있는 따뜻한 사연을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보여줌으로써 감성을 회복시키는 작업을 수업시작 부문에  도입하는 것.

두번째는 ‘방법으로 열어가는 수업’으로 작품에 대한 결과를 직접 선생님이 알려주기보다  스스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  좀더 창의적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문산여고서부터 직접 쓴 『문학입문서』는 현장 교사가 쓴 책으로는 처음으로  문학교육의 방법을 다룬 책으로 중·고등학교 국어수업의 필독서가 됐다. 

주변에서 실전문제 풀 시간도 없는데 웬 문학이냐는 불평도 들어야 했지만 몇몇 제자는 백일장에 입상해 문예특기자로 대학에 진학하는 등 입시 교육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이 인정됐다.

그러나 이교사는 입시를 목적으로 배우는 문학을 단호히 거부한다. “입시용으로 배우는 문학이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입니까. 문학은 지식이 아닙니다. 김소월의 시를 시집이 아니라 수능 점수 잘 받기 위한 문제풀이에서 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받아쓰기 수업에 길들여진 학생은 문제 해결이나  비판 능력도 제로가 됩니다.”  “문학교육은 창작교육에 연계돼야 한다”라고 말하는 이교사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인생을 살아가는데 감성의 힘은 매주 중요하며 감성을 키우는 핵심이 바로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유미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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