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유씨 門中공원은 걸작

▲ 행신동 장고뫼 마을의 개발 전 모습이다. 마을 앞으로 경의선 기차가 지나가고 있다.
행신2동은 같은 동사무소에 속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마을이다.
큰 면적을 차지하면서도 인구가 적은 강매동은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을 하고 있어, 3층 이상의 건물이 전무한 상태이며 집들도 대부분 한옥 단독 주택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소망마을과 무원마을은 아파트가 많고 학교, 공원이 있는 도시화된 마을이다.

이곳에는 고양시에서 가장 잘 조성된 문중 공원이 있다 . 공원 내에 진주유씨 묘역이 대규모로 조성되 있는데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유형 장군 묘가 가장 대표적이고 유림, 유진동, 유구, 유겸 선생등의 묘소들이 고양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행신2동은 조선조 후기 영조때의 기록을 보면 강고산리에 모두 55집이, 서 행신리에 43호가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중 서 행신리는 번답리(藩沓里)마을이 있는 것으로 쓰여 있는데 이는 번데미를 부르는 이름의 고 지명임을 알 수 있다. 번데미는 이 진주유씨 묘역이 있는 마을로 아파트가 개발되기 이전부터 불리던 이름이다.
 

이후 이 마을은 고양군 구지도면을 거쳐 지도읍이 되었다가 1996년 덕양구 행신동으로 부르고 있다.  한편 강매동은 구 지도면에 속했다가 현재는 행정구역은 행신2동이며 법정동으로는 강매동에 속하고 있다.

이곳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이전 마을 이름을 장고뫼, 번데미, 무원이, 소만이, 차장말 등으로 불렀다. 이 이름들은 각기 여러 가지 뜻이 담겨져 있는 고유한 지명들인데 일부 이름들은 현재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소만이 마을에는 큰 회화나무와 마을 뒷편에 있던 청주한씨 성을 가진 조선시대 양반가 유적이 유명하고 보기 드문 묘제연구에 귀중한 자료들이 발굴되기도 했다.  소만마을과 무원마을 사이에는 차장말이 있었는데 넓은 들판과 햇빛, 산 등으로 살기좋은 마을이였다. 이 마을과 강매동 사이에 경의선 강매역이 있다. 수 십년간 마을 주민들이 서울이나 인근마을로 이동할 때 사용하던 교통 수단으로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매화재라 부른다.

마을의 가운데에 있는 행신역은 새로운 발전의 상징이다. 상권이 발달하며 부동산의 가치가 높아지고 주민들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 만큼 행신2동의 시민들도 행복해 질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마을이면서도 서로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는 강매동 주민들과 지금과 같이 서로 화합하고 다함께 더불어 사는 모습이 보다 확실하게 보여지길 기대한다.

<정동일 (고양시청 전문직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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