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신들의 멋과 부를 과시하기 위해 귓볼을 뚫어가면서까지 치장을 한다. 이름하여 보석을 달아주는 것이다. 그 보석은 흔히 귀금속이라 부르는 것이 많다. 쉽게 변하지 않으며 얻기 힘들고 많은 돈을 들여서 구하러 다녀야만 한다.

그런데 그 흔한 물과 공기와 토양(땅)를 귀히 여겨 찾아 나서는 사람은 적다. 상식에 속하는 것이지만, 만일 이들 세 가지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없다면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는다.

우리는 이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보석처럼 중요하다거나, 또는 중요하다 해서 애지중지하고 아끼며 마치 없어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왜일까? 한없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생명체들에게는 이들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한없이 많이 생겨나 있는 것이다.

■ 산은 어머니 태반 같은 곳

우리들에게 산은 예로부터 생존을 위한 터전이었다. 거기에는 먹거리와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인간만이 숲에서 살아갔던 것이 아니다. 오늘날까지도 인간을 제외한 수많은 생물들이 바로 숲에, 산 속에 안주하고 있다.


건강한 숲이 있는 산은 물을 저장하고 인간을 포함한 생물이 삶을 시작하며 영위하고 언젠가는 종말을 고하는 곳이다. 하늘에서 숲과 산으로 흘러든 물은 지하로 스며들어가 정화되어 우리들에게 생수요, 약수라는 이름으로 다가온다. 물이 생겨나고 이용되며 다시 저장되는 곳이 바로 산이다. 생명체를 키우는 곳이기에 살아있는 생명체인, 어머니의 태반과 같은 곳이다 .

산자락에서는 대부분 지하수나 표층수가 흘러나온다. 이는 인간을 포함한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이용하기에 아주 적합한 살아있는 물이다. 생명체를 이야기하면서 물을 빼놓을 수 없으며 물을 떠나 살 수 있는 생물은 없다고 단정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 생태문화의 학습장 고봉산

우리 고양시 일산의 고봉산에도 이러한 물이 생겨나고 저장되며 필요한 곳으로 분배되는 이른바 습지라는 곳이 있다. 바로 일산동의 송학정 활터주변이 그곳이다. 이곳에는 수질정화와 생물들의 서식공간을 만들어 주는데 탁월한 기능을 하는 부들, 줄 및 갈대로 이루어진 숲이 약 6000㎡의 건강한 모습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반기고 있다.


위에서 흘러나오는 탁한 하수가 이곳을 지나면서 물 속에 사는 수초들인 가래, 붕어말, 검정말, 골풀, 주변의 고마리 등에 의해 눈에 금방 뜨일 정도로 깨끗하게 정화되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정도다. 수질을 정화해 주는 이런 생태적 정화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바로 보고 익히고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물이 깨끗하기에 깨끗한 물에서나 볼 수 있는 송사리, 하루살이, 반딧불이 등이 살아가고 있기도 하다.

깨끗한 물은 결코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인간의 편의를 위한 활동으로 더러워진 물을 인위적으로 다시 정화하고자 한다면 이러한 습지생물이 가지는 정화에너지의 몇 백배의 에너지와 그에 따르는 경제적 출혈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최근에 생명활동의 보고인 고봉산의 산자락 습지에 대형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이 아파트가 바라보는 습지와 산이 위협받고 있다. 작되 결코 초라하지 않은, 수많은 생물들이 살고 있으며 이를 아름답게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즐거움을 듬뿍 안겨주는 작은 습지가 걱정스럽게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다.

■ 논은 먼지를 제거하는 공기정화기

이 습지 주변에는 논이라는 벼의 경작지가 있다. 독자들은 아마 어느 방송국에서 특집으로 논의 생태에 대해 방송한 적이 있음을 기억할지도 모른다. 논은 결코 급하지 않다. 겨우내 때를 기다려 봄 풀인 냉이와 벼룩나물, 벼룩이자리, 지칭개 등의 먹거리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 여름이면 벼를 받아들여 최선을 다해 길러 주며, 가을이면 수확의 기쁨을 나눠주고, 겨울이면 새들의 먹잇감을 제공해 주는 넉넉한 곳이다.

논에서 증발하는 수증기의 양 또한 엄청나다. 이러한 수증기는 대기중으로 퍼져나가 대기중의 비산먼지, 미세먼지를 제거하거나 땅으로 끌어내린다. 한낮에 대기의 온도를 낮춰주고 한밤에는 안개를 만들어 대기를 물리적으로 정화해 준다. 숲 역시 마찬가지이다. 논보다는 못하지만, 우리가 숲에서 상쾌함을 얻어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낮은 상대온도와 높은 상대습도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숲이 만들어 주는 건강보험의 하나인 것이다.

본성을 잃은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고봉산은 본성의 시험대라 생각된다. 누구도 자신의 본성이 사소한 것으로 훼손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깨끗한 물이 흐르는 고봉산은 일산의 유일한 산이요, 생태 문화적 학습장이며, 도심의 대기를 정화하는 중요한 증기의 공급처이며, 종 다양성을 보장하는 건강을 나누어주는 보험회사 같은 존재이다.

고봉산으로부터 무엇을 잘라내는 것은 손가락 하나를 자르는 일과 같다. 고봉산이 작은 새끼손가락 같은 존재일 수 있으나, 고봉산이 잘리고 없어지면 곧 새끼손가락이 잘리는 것과 같다. 일산이 병신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번듯한 산 하나 없는 병신도시에 산다고 자랑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경희대 생물학과 교수·환경부장관전문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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