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덕양구 고양동에 속해 있는 법정동 마을은 모두 4개의 마을이다. 이중에서 대자동은 일부는 관산동에 속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고양동에 속해 있다. 먼저 파주시. 양주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마을이 벽제동이다.

벽제동은 본래 양주지역에 속한 곳이었으나 1906년 9월 24일에 고양군으로 편입된 지역이다. 대자동 지역은 개발제한 구역 등으로 인하여 교통이 매우 편리한 지역 이면서도 농촌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지역이다.

선유동은 곡릉천 주변에 있는 농촌 마을로 본래 양주에서 고양지역으로 들어온 마을이다. 고양동은 예전부터 읍내라는 명칭으로 오랜 기간 불리어온 마을이다.

이곳 행정동 고양동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본래는 고양군 사리대면에 속한 마을이다. 현재 고양동은 이렇게 4개의 법정동을 거느리고 있다.

이곳 고양동에는 조선조 인조 때부터 최근 1914년 고양군청이 서울 충정로로 이전되기 전 까지 300 여년 간 고양지역의 교통, 행정, 역사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이러한 이유로 하여 이곳에는 아직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고양향교를 비롯하여 벽제관지. 고양동 느티나무 등 많은 문화유산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충신중에 한분인 무민공 최영장군의 유적지와 고양의 역사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연산군 시대의 금표비가 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근대의 시인으로 유명한 노천명의 묘소도 고양동에 있다.

특고양동의 중심지에는 오래된 문화유적 벽제관지가 자리해 있다. 이 유적은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가지정 문화재로 본래는 한석봉이 썼다고 하는 벽제관 글씨를 비롯한 건물과 유적이 남아 있었으나 현재는 전란 등으로 소실되고 그 터만 남아 있다.

 이곳 벽제관은 한양에서 개성을 거쳐 북쪽지방이나 중국으로 가는 관서대로, 연행로, 의주로로 연결되는 곳에 자리한 객관 이였다.

즉 중국의 사신이나 고위관리가 이곳을 지날 때 머물던 숙박장소인 동시에 관공서의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에 이곳 벽제관 부근에서는 명나라와 왜군의 정예병 2만여명이 치열한 접전을 벌여 명군이 크게 패한 벽제관 전투로 유명하다.

고양동의 여러마을 중에서 고양동과 벽제동은 개발의 압력을 받고 있다. 이러한 결과 1990년대 중, 후반부터 고층의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으며 특히 대규모의 아파트 단지인 푸른마을의 입주후 이곳 고양동에는 옛 모습과는 다른 풍경들이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토박이 마을 중심, 한옥 형태의 집 구조 등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개통되고 개발제한 구역이 해제, 완화되면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마을의 주민 모두가 고양시를 떠나지 않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가길 기원해 본다.

정동일 (고양시청 문화재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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