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은섭 대한노인대학 학장

계명산 계곡에서 내려온 곡릉천의 물들이 통일로를 따라 흐른다. 아직은 송추, 장흥, 일영에서 뽐내던 그 자태 그대로 관산삼거리를 지날 무렵 빛을 뿜어내며 반짝인다. 토요일 오후의 빛으로 자신들을 화려하게 꾸미고 있는 그 물빛 옆에서 한 중년신사가 핸드폰을 받고 있다. 사단법인 한국노인대학복지협의회 대한노인대학 심은섭(55세, 학림교회 목사) 학장이었다.

일제, 6.25, 군사독제, 뒤틀리고 꼬인 우리의 역사 속을 여태껏 맨몸으로 살아오신 분들. 이제는 예(禮)와 경(敬)의 정신이 사그라지고 개인주의가 팽배해진 젊은이들에게 떠밀려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구석에 처박혀 지내는 지금의 노인분들. 심은섭씨에게 있어서는 이제 살아계실 날도 그리 많지 않는 그분들을 그냥 내버려둔다는 것은 죄악이었다.

그래서 수색에서 ‘올리 효도 내리 사랑’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시작한 노인대학이 벌써 10여년이 지났다. 노인대학 운영에 대한 노하우가 하나 둘 쌓여지던 2001년에 이곳, 관산동 곡릉천 변에 마련한 땅에 가건물을 지어 노인대학을 새롭게 열었다.

출석부도 만들고, 학적부도, 학생증도, 명찰도, 배지도, 스카프까지 만들어 명실상부한 학교로 운영한 지 4년 여. 주변에 아파트단지 하나 변변하게 서있지 않는 허허 벌판 같은 그곳으로 노인들이 몰려들었다. 불교신자도, 고급관료 출신도, 교장 출신도, 사회로부터, 젊은이들로부터 떠밀려 지내던 분들이 113명이나 시시각각 몰려들었다.

주 2회(목, 일요일)로 모여 오전엔 흘러간 옛 노래를 전문 음악인으로부터 지도받고, 출석 체크를 한 다음, 심은섭씨가 주로 노인관련 주제로 경건회 시간을 갖는다. 그 다음엔 가정주부들이 도우미로 와서 맛있게 차려준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동요를 부른다. 아이들보다도 더 맑고 더 밝게 노래 부른다. 창단 예정으로 있는 <대한노인학합창단> 단원이 될 꿈에 부풀어서만은 아니었다. 심은섭씨에 의하면 그들의 모습은 매일매일 달라진다고 했다. 처음엔 어색해하고 콧방귀 뀌던 어르신네들도 이제는 누구보다도 앞장선다고 말한다. 그분들이 앞장서서 손수 화장실까지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수업일수를 늘려달라고 때를 쓰기도 한다고 말하는 심은섭씨는 기쁨으로 상기되는 표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노인분들의 기쁨이 자신의 기쁨임을 체험하고 있는 심은섭씨는 지난번 청와대를 방문(4월 28일, 92명)하였던 것과 같은 행사를 구상하고, 의료나 미용 등 복지 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분주하게 전화를 건다.
곡릉천의 물이 고양시로 흘러들면서 오염되고 있다. 저 물에 우리가 심은섭씨 같은 마음을 쏟는다면 저 물도 저 노인분들처럼 한강 하구로 흘러들 때까지도 맑게 반짝일 터이다.
 
/ 권혁상 기자 sigaek@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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