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갈대섬(압도)에서 특산물도 나와

장항1동은 자유로와 일산신시가지 사이에 위치하며 장항2동의 고층아파트와는 달리 단독주택, 창고형 건축물이 대부분인 마을이다.

* 한강과 정발산을 오가던 노루 길목

 장항1동은 고양의 남과 북을 연결하는 자유로 아래에 있는 마을이다. 인근에 자리한 신평동 법곳동과 함께 해발이 가장 낯은 곳으로 일부구간은 한강의 수면보다 낮은 곳도 있다. 장항1동의 자유로 너머로로 숲과 늪지, 그리고 논이 있다. 이 지역은 민간인의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주민들은 허락을 받고 출입하며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곳을 노루 길목(獐項)이라 부르는 것은 이 일대가 한강과 정발산의 중간으로 노루가 자주 지나가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노루와 관련된 또 하나의 증거는 최근에 한강가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는 노루의 모습이다. 가을과 겨울에 자유로 인근에서는 한강과 자유로 사이의 습지에서 고라니라 불리는 동물의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1920년대 후반까지는 갈대밭, 습지

 장항1동 마을은 한강의 제방이 완성된 1920년대 후반 이전까지는 거대한 습지였던 곳이다. 1755년 조선조 영조 년간에 발간된 고양군지를 보면 이곳에 압도(鴨島)가 있는데 주위가 모두 1만 257척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한양의 관청인 선공감(繕工監) 초장이 있어 초란(草蘭)과 정란(正蘭)을 국가에 제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선공감이 관할하는 압도는 지금의 호수공원 일대와 장항동 그리고 주엽동이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도 습지에서는 당시의 갈대에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갈대가 유명하던 이곳은 1925년 고양지역의 거대한 을축년 대홍수를 겪으면서 크게 변화한다. 먼저 대보뚝이라는 거대한 제방이 만들어진다. 일본인이 주관이 되어 쌓여진 이 뚝으로 인해 장항동 일대는 황무지로 남아 있다가 고양군 수리조합의 농지정리 작업으로 거대한 일산평야가 만들어졌다.

* 무검 산염 노첨 수용소라 불리던 마을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친근하게 불리어 오는 자연촌락의 이름이 있다. 먼저 무검이란 마을은 이곳이 한강과 매우 가까이 있어 홍수가 많이 발생하여 무당이 칼을 가지고 굿을 하는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염은 이곳에 작은 포구가 있어 소금이 산과 같이 가득 쌓여있다고 붙여진 이름이며, 노첨은 갈대가 매우 많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한편 흔히 수용소라 부르는 마을이 있는데 이는 북에서 피난온 실향민들이 정착하여 집단으로 거주한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이다. 지금도 이 마을의 토박이 주민들은 정감어리고 역사성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이름들을 사용하고 있다.

* 1990년 한강제방 붕괴로 큰 어려움 겪어

이곳 주민들은 1990년 여름의 악몽을 잊지 못한다. 새벽에 무너진 한강제방 사이로 물이 마을을 뒤덮어 큰 피해가 났다. 신속한 피신으로 소와 돼지 등 가축의 피해는 대단하였으나 인명피해는 크지 않았다. 이 한강제방 붕괴로 인하여 마을의 모습도 조금씩 변화하였고,  자유로가 완공되어 수도권과의 접근성이 좋아져 물류창고와 공장이 들어서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장항1동은 창고, 좁은 도로, 작은 분교, 인쇄소, 비닐하우스, 밭,  작은 주택, 외국인 노동자 등을 다른 고양시 마을에 비해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자유로 위에서 바라본 장항1동과 2동의 차이는 외형적으로는 크게 나타나고 있다.
그동안 마을이 외부와 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변화되었다면 앞으로는 장항1동 주민들이 바라는 바대로 마을이 발전하여 행복한 마을이 되길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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