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경원 (수필문학가, 강촌수필문학회원)

저녁 무렵 홀로 산책을 나섰다. 집 건너편에 있는 산책로를 즐겨 찾곤 하는데 그 길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경의선 철로가 오랜 친구처럼 묵묵히 동행해 주기 때문이다.

철로변을 따라 걷다가 야트막한 둔덕 위에 아주머니 둘이 채소를 다듬고 있는 모습이 보여 그리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엔 채소들이 녹색 파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인근 주민들이 가꾼 채소밭이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뜬금없이 펼쳐진 그 평화로운 풍경이 나를 붙들었다.

철사로 얼기설기 쳐놓은 울타리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서며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케일이냐고. 잎이 둥글게 헤벌어지긴 했어도 그것은 분명 매일 조석으로 마시는 녹즙 재료 케일이었다. 그러나 아저씨는 '아니,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양배추'라고 대답하며 고구마 잎을 신기하게 들여다보는 나를 오히려 신기해했다.

쇠스랑 아저씨가 허리를 펴며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했다. 고구마 잎을 제치고 쇠스랑으로 흙을 파더니 붉은 색이 선명하고 촉촉한 고구마 두 개를 주었다. 갑자기 견학 나온 유치원생이 된 기분이었다. 내친 김에 호박잎도 몇 개 얻어갈 요량으로 큰 잎 몇 장을 땄다. 그 모양새를 지켜보던 아저씨가 한심했는지 직접 나서서 연하고 어린잎만 골라 금세 한 움큼 따 주었다. 그리고는 텃밭의 채소를 구경시켜주셨다.

녹색 잎사귀가 공주님처럼 떠받치고 있는 작은 알사탕 크기의 노오란 꽃이 눈에 띄었다. 꽃잎이 배배 꼬이듯이 겹쳐져 핀 것이 특이하고 예뻤다. 물어보니 동부(콩) 꽃이라 했다. 바로 옆에는 시퍼렇게 물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무밭은 헤픈 아낙처럼 하얀 허리춤을 살짝 드러내고 있었다.

그 싱싱한 채소들을 보는 순간 아픈 남편에게 영양분이 살아있는 녹즙을 해주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내 마음을 눈치 챈 것일까? 아저씨가 불쑥 무 한 개를 뽑아 우두둑 무청을 분질러 벌레 먹은 것은 버리고 좋은 것만 골라 주었다.

인심 좋은 사람들이 안겨준 귀한 선물, 아직 덜 자라 양푼처럼 헤프게 벌어진 양배추 하나를 품에 안고 너무 좋아서 몇 번이고 머리 숙여 인사를 하고 돌아 나왔다. 농약 대신 하늘과 자신들의 땀으로 키운, 조금 더 자라면 장에 내다 팔아 생활비에 보탤 거라던 채소들이다. 배달시켜 먹고 있는 비싼 유기농 채소와는 비할 수 없이 귀하게 여겨졌다. 그것들은 따뜻한 가슴에서만 자라는 '인정(人情)'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불행한 것은 가진 것이 적어서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잃어가기 때문이다"라던 법정스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이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김치전이라도 부쳐서 인정에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갑자기 큰 부자라도 된 듯 가슴이 풍성해져서 가고자했던 산책로를 버리고 철로변의 채소밭을 따라 걸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짙푸른 푸성귀들만 어깨를 들썩이는 유유자적함이 바닷가를 거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출발할 때 계획했던 지점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곳이었지만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뒤돌아섰다. 오늘은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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