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⑤ 행주산성역사누리길

덕양산·행주산성 차례로 둘러보는 순환코스 
행주대첩 승전 기념하는 조형·건물 곳곳에 
치열했던 역사의 장면 상상하며 걷는 토성길

나무와 새들이 머무는 ‘야생생물 보호구역’
새롭게 정비된 덕양산 숲길과 수변누리길
마무리는 한강 너머로 저무는 석양과 함께  

행주산성 정상의 대첩비각(오른쪽)과 신행주대첩비. 
행주산성 정상의 대첩비각(오른쪽)과 신행주대첩비. 

[고양신문] 북한산에서 출발한 고양누리길 나들이가 행주산성, 한강까지 다다랐다. 한여름에 연재를 시작했는데 어느덧 가을 문턱,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걷는 기분이다. 

오늘 소개할 5코스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은 처음 만나는 순환코스다. 어디서 시작하든 길을 한 바퀴 돌면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공식적으로는 앞선 4코스의 종착점인 행주산성 대첩문이 5코스의 출발점이지만, 기자는 한강변에 자리한 고양인재교육원 주차장을 출발점으로 추천하고 싶다. 우선 무료 주차가 가능하고, 행주산성과 덕양산을 둘러본 뒤 원점으로 돌아와 강변에서의 낭만을 즐기며 나들이를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양누리길 홈페이지에 소개된 코스 길이는 3.7㎞로 고양누리길 14코스 중 가장 짧다. 비록 길이는 짧지만 역사·지리적 측면에서 어느 길보다도 풍성한 스토리를 안고 있고, 오솔길과 물길을 두루 아우르기 때문에 길 자체의 매력도 넉넉하다. 타지에서 온 지인에게 고양누리길 딱 한 코스를 소개할 일이 있다면, 행주산성역사누리길을 선택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행주산성수변누리길에서 바라본 한강과 방화대교. 
행주산성수변누리길에서 바라본 한강과 방화대교. 

많아진 길, 자유롭게 코스 선택

출발 전에 아래 지도를 보며 오늘의 코스를 체크해 보자(지도는 고양누리길 홈페이지에서 내려받았고, 기자가 임의로 숫자와 화살표를 보탰다). 길은 이중 삼중으로 중첩돼 있어서 다양한 코스를 설계할 수 있다. 고양누리길 홈페이지에 소개된 3.7㎞는 ①~②~③번 순서로 걸었을 때의 거리다. 기자가 추천하는 코스는 지도의 ①~②~대첩문으로 회귀~⑤~⑥번을 따라 걷는 것이다. 

 

지도를 좀 더 살펴보자. 예전에는 덕양산을 한 바퀴 돌기 위해 자유로 하단을 두 번이나 통과해야 하는 ④번 길을 걸어야 했지만, 산길로 연결된 ⑤번 길이 생겼으니 앞으로는 ④번 길을 걸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 같다. 반면 강변 쪽을 도는 ③번길과 ⑥번 길은 각자의 취향 따라 선택하면 된다. 오르락내리락 산길을 즐기고 싶으면 원래 있던 ③번길을, 느긋한 강 풍경을 감상하고 싶으면 새로 만들어진 ⑥번길이 답이다.

하나만 더 짚자면, 기자는 대첩문을 출발해 행주산성 경내를 두루 살펴보고 다시 대첩문으로 돌아오도록 코스를 짰는데 올라갈 때는 지도의 아래쪽 화살표, 내려올 때는 위쪽 화살표를 따라 방향을 잡기를 추천한다. 이유는 뒤에 설명하겠다.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고양인재교육원 주차장 진입도로.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고양인재교육원 주차장 진입도로.

방문객 반기는 권율도원수 동상

출발지점인 고양인재교육원 주차장은 그 자체로 멋진 공원이다. 벤치와 전망대, 석비와 조형물 등이 구석구석 놓여 있다. 키 큰 메타세쿼이아가 도열한 진입로와 계단을 지나 행주산성 정문인 대첩문으로 향한다. 

대첩문에 들어서면 임진왜란 3대 승전으로 손꼽히는 행주대첩을 이끈 권율도원수의 동상과 마주한다. 동상 주변에는 관군과 승병, 의병, 그리고 성읍 백성들까지 하나가 되어 적과 맞섰던 모습을 새긴 부조상(浮彫像)이 새겨져 있다.

권율도원수 동상을 둘러싼 부조상. 
권율도원수 동상을 둘러싼 부조상.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면 권율 장군의 영정을 모신 충장사, 행주대첩의 역사와 유물을 전시한 대첩기념관, 영상교육관으로 활용되는 충의정, 행주대첩 초건비(初建碑)가 모셔진 대첩비각, 그리고 덕양산 정상에 우뚝 서 있는 신(新)행주대첩비가 차례차례 나타난다.  

공간과 콘텐츠 새롭게 디자인해야 

지금 우리가 마주하는 행주산성은 1960년대 ‘행주산성 성역화사업’을 통해 기본 구조가 갖춰졌다. 국난극복의 역사를 기리고자 했던 당시의 박정희 대통령은 신행주대첩비의 글씨를 직접 쓰기도 했다. 때문에 오늘날 행주산성은 아산 현충사와 함께 대표적인 호국성지, 안보관광지라는, 조금은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첩비 아래쪽에 자리한 덕양정.
대첩비 아래쪽에 자리한 덕양정.

하지만 덕양산과 행주산성의 역사적 가치는 행주대첩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한강 하구 길목을 지키는 덕양산은 한반도에 고대국가의 기틀이 갖춰질 무렵부터 백제와 고구려, 신라가 각축전을 벌였던 요충지였다. 최근 덕양산 정상부에서 발견된 삼국시대 석성(石城) 유적과 유물들은 행주산성의 유구한 역사를 방증해준다. 1960~70년대의 정서와 감각으로 채워져 있는 행주산성의 콘텐츠들을 확장된 시선으로 새롭게 디자인할 책임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닐까.    

아름드리 나무 수종별로 가득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는 행주산성 숲.
다양한 수종을 만날 수 있는 행주산성 숲.

행주산성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우리나라 산림의 주종을 이루는 다양한 수종들을 골고루 만날 수 있다. 입구에서부터 멋진 자태의 적송과 반송이 방문객을 반기고, 오르막길을 따라 은행나무, 밤나무, 왕벚나무, 잣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무성한 가지를 뻗고 있다.   

충장사 입구 단풍나무길.
충장사 입구 단풍나무길.

그런가 하면 충장사로 오르는 길에는 단풍나무와 느티나무가 도열해 환상적인 터널길을 연출한다. 정상 전망대 주변과 토성길에도 회화나무와 물푸레나무, 신갈나무와 살구나무 등을 만날 수 있다. 오랜 세월을 방증하듯 나무들은 하나같이 밑동이 굵고, 푸르른 이끼와 덩굴들을 고즈넉이 감고 있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이렇듯 숲이 울창하다 보니 행주산성 일대는 고양시가 특별 관리하는 ‘야생생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안내판을 읽어보니 덕양산 숲에는 새호리기, 붉은머리오목눈이, 노랑배진박새, 되새 등 반가운 친구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음이 웅장해지는 정상 조망

한강을 굽어보고 있는 진강정. 
한강을 굽어보고 있는 진강정. 

행주산성에는 두 개의 정자가 있다. 대첩비 아래쪽의 커다란 팔각정자는 산 이름을 딴 덕양정(德陽亭)이고, 좀 더 아래쪽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진강정(鎭江亭)이라는 또 하나의 정자가 호젓하게 자리하고 있다. 눈 아래 펼쳐진 한강물이 사나움을 부리지 않도록 지그시 눌러주려는(鎭), 그래서 나라가 평안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이름에 담겼다.

덕양산은 높이 124m에 불과한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 올라서면 어느 산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만한 조망을 품고 있다. 한반도 역사의 중심인 한강 하구의 진산(鎭山) 북한산의 장엄한 모습과 수도 서울의 젖줄 한강의 유장한 물줄기, 그리고 그 둘을 이어주는 창릉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가히 감동적이다. 

그런가 하면 고양땅 곳곳의 나지막한 야산과 농경지, 그리고 빠른 속도로 여백을 지워가고 있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도로들은 이삼십 년 사이 고양 땅에서 전개된 역동적 변화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덕양산 정상의 조망.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온 창릉천은 행주산성 아래에서 한강과 만난다. 
덕양산 정상의 조망. 북한산에서 흘러내려온 창릉천은 행주산성 아래에서 한강과 만난다. 

빠뜨리지 말아야 할 토성길 산책 

행주산성 방문객 열에 일곱은 토성길을 그냥 건너뛰곤 하는데, 기자가 손꼽은 행주산성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토성구간이다. 눈에 보이는 기념물들로 이어진 메인 산책코스와 달리 토성구간은 과거 이곳에서 벌어졌던 역사 속 장면들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도록 이끌어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토성 구간은 충의정 뒤편의 계단을 내려서면 시작되는데, 아래쪽 성문지(城門址)까지 400m가량이 원형을 짐작할만한 모습으로 정비됐다. 성이라고 해서 북한산성처럼 뚜렷한 성곽(城郭)이나 여장(女墻)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경사면 중턱을 따라 길게 흙으로 둔덕을 쌓아 안쪽으로 이동로와 배수로를 만들고, 바깥쪽의 가파른 언덕을 기어올라오는 침입자들을 막도록 한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목책을 비롯해 산성방어를 위한 부수적 시설들이 함께 있었을 것이다.

행주산성 나들이의 하이라이트인 토성길.
행주산성 나들이의 하이라이트인 토성길.

행주산성 토성 산책은 앞서 말했듯 ‘역사적 상상력’과 함께 해야 한다. 사생결단의 결기로 활을 쏘고 창을 휘둘렀을 관군과 의·승병들, 가파른 경사면을 아득바득 기어올라왔을 왜구들, 함께 살아남기 위해 치맛자락으로 돌이라도 날라야 했던 민초들의 절박함…. ‘임진왜란 3대첩’이라는 찬란한 이름만으로는 차마 담아내지 못하는 생과 사의 참혹함이 이 작은 산에서, 특히 이곳 토성 일대에서 가장 치열하게 벌어졌다는 사실을 눈을 감고 곱씹어본다.    

한강변 비경 보여주는 수변누리길 

다시 대첩문으로 돌아와 덕양산 둘레를 한바퀴 돌아보자. 행주내동 마을길 일부가 시원하게 넓어져서 반갑고, 먹거리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창릉천 하구로 넘어가는 오솔길 산책로(지도 ⑤번길)가 새로 정비된 모습은 더 반갑다. 데크와 계단, 보행매트가 적절히 설치돼 있어서 협소한 산길을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다.  

덕양산 둘레를 도는 오솔길 산책로.
덕양산 둘레를 도는 오솔길 산책로.

산길을 내려오면 창릉천이 한강과 만나는 합수부다. 이곳에선 마치 등대처럼 생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만나게 되는데, 등대가 아니라 ‘고양 행주수위관측소(高陽 幸州水位觀測所)’다. 일제강점기에 한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져 1970년대 후반까지도 관측이 지속됐다고 한다. 근대의 흔적을 보여주는 특별한 등록문화재다.

처음 본 사람은 등대로 오해하곤 하는 고양 행주수위관측소.
처음 본 사람은 등대로 오해하곤 하는 고양 행주수위관측소.

길은 재작년에 새로 조성된, 강변을 따라 데크가 이어진 행주산성 수변누리길(지도 ⑥번길)로 이어진다. 군 초소와 철책선으로 은폐됐던 덕양산은 이 길이 열리면서 비로소 안팎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게 됐다. 한가롭게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 햇살 부서지는 수면을 차고 날아오르는 물오리와 가마우지, 우아한 아치를 뽐내는 방화대교의 모습을 감상하며 수변길 데크를 걷는 기분이 상쾌하다. 수변누리길이 끝나는 언덕 위에 자리한 팔각초소전망대는 행주대교 너머 붉게 물드는 석양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명당이다. 

강변의 정취를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는 행주산성 수변누리길.
강변의 정취를 가까이에서 누릴 수 있는 행주산성 수변누리길.

시민 품으로 돌아온 철책 너머의 땅

팔각초소전망대에서 계단길을 내려와 행주산성역사공원으로 향한다. 오랜 세월 철책선이 가로막힌 금단의 땅이었다가 수년 전 시민들에게 개방된 행주산성역사공원은 고양시 구간에서 유일하게 한강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는 쉼터다. 
물가에서 물수제비를 던지고, 돗자리에 누워 책을 읽고, 그네 의자에 나란히 앉아 셀카를 찍고…. 아름다운 공간이 선물해준 여유로운 시간을 각자의 방식으로 누리고 있는 풍경을 먼발치에서 카메라에 담으며 행주산성역사누리길 나들이를 마무리한다. 

행주산성역사공원 수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 
행주산성역사공원 수변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이들. 

❚행주산성역사누리길 걷기 정보 
- 코스 길이 : 3.9㎞(추천 코스 약 6㎞)
- 소요 시간 : 1시간 30분 + α
- 출발점 : 고양인재교육원 주차장, 또는 대첩문
- 경관포인트 : 행주산성 정상, 덕양정, 행주수위관측소, 수변누리길 데크, 팔각초소전망대
- 화장실 : 4곳(고양인재교육원, 대첩문, 산성 안, 행주산성역사공원) 
- 뒤풀이 맛집 : 행주내동 먹거리촌, 능곡전통시장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행주산성 토성길 구간.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행주산성 토성길 구간. 
덕양산 정상에서 서울 방향을 바라본 풍경. 한강과 자유로가 나란히 뻗어 있고, 남산과 관악산이 조망된다. 
덕양산 정상에서 서울 방향을 바라본 풍경. 한강과 자유로가 나란히 뻗어 있고, 남산과 관악산이 조망된다. 
행주산성역사누리길 나들이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행주산성역사공원. 
행주산성역사누리길 나들이를 마무리하기에 딱 좋은 행주산성역사공원. 
팔각초소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 오른쪽으로 행주대교와 김포대교가 보인다. 
팔각초소전망대에서 바라본 석양. 오른쪽으로 행주대교와 김포대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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