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경종 기자의 하루여행] 고양누리길⑦ 호수누리길

호수공원~상가거리~문화공원 잇는 6.24km
고양시민이 사랑하는 첫손가락 일산호수공원
가장 좋아하는 장소, 열이면 열 모두 달라

세월 지나며 점점 풍요로워지는 숲과 호수
개발 전 흔적 간직한 아랫말산과 회화나무
라페스타 웨스턴돔, 활기 되찾을 수 있을까 
  

[고양신문] 어느덧 올해도 아홉 달이 지나갔다. 하루의 대부분을 실내에서 생활하는 현대인들은 계절의 변화를 달력이나 스마트폰 화면의 숫자를 통해 확인한다. 하지만 자연과 더불어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옛사람들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기울어가는 햇살, 누긋해지는 풀냄새, 아침저녁 서늘해지는 바람의 촉감 등을 감지하며 자연스레 시절의 변화를 인지했으리라. 이왕이면 가까운 고양누리길을 나들이하며 숫자가 아닌 내 몸의 오감으로 성큼 찾아온 가을을 반겨보자.

일산호수공원을 조성한 후 한국토지공사에서 세운 기념석. 
일산호수공원을 조성한 후 한국토지공사에서 세운 기념석. 

취향과 여건 따라 산책코스 선택 

고양누리길 7코스 호수누리길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일산호수공원을 중심으로 주변 관광특구지역을 함께 돌아보는 순환코스다. 정발산역을 출발점 삼아 ▶웨스턴돔 상가거리 ▶낙민공원 ▶일산호수공원 ▶주엽공원 ▶라페스타 상가거리 ▶일산문화공원으로 돌아오면 6.24km를 걷게 된다. 

사실 이 길은 코스 안내가 별 의미가 없다. 고양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장소이기 때문에, 각자 어느 지점에서 출발해 어떤 속도로 산책을 즐길 것인가에 따라 천차만별 코스 구성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산호수공원만 보더라도 동쪽부터 청평지공원, 폭포호수, 한울광장호수, 자연호수 등 여러 개의 구간이 이어지고, 애수교와 월파정을 통해 호수 남단과 북단을 넘나들 수 있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맞춰 걷고 싶은 코스를 걸으면 된다. 

일산문화공원을 중심으로 양측으로 뻗은 라페스타, 웨스턴돔 상가거리 역시 마찬가지다. 고양누리길 완주를 위해 한번쯤은 고양누리길 노선대로 걸어볼 수 있겠지만, 평소라면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관광특구지역 구석구석의 다채로운 재미와 매력을 찾아 즐기면 될 일이다. 

주엽공원에서 라페스타로 이어지는 식당가. 
주엽공원에서 라페스타로 이어지는 식당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곳은?

호수공원을 즐겨 찾는 이라면 저마다 ‘호수공원 사용법’ 두세 개쯤은 가지고 있다. 공원 전체를 일주할 수 있는 산책로와 자전거길, 호수를 바라보는 방향으로 배치된 그네의자,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을 수 있는 버드나무 아래 피크닉테이블, 연꽃 사이로 잉어들이 헤엄치는 생태호수 나무데크, 호수 전체가 조망되는 월파정 정자, 책이 있고 이웃들과의 만남이 있는 호수공원작은도서관…

계절마다 느낌도 다르다. 화사한 꽃비가 심장으로 내려앉는 봄날의 왕벚꽃길, 울긋불긋 꽃향기로 가득한 초여름 장미원, 추억이 발 아래서 바스락거리는 가을날의 숲속 산책로, 새하얀 눈이불을 덮은 꽁꽁 언 겨울호수… 호수공원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와 계절을 열 명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아마도 열 가지 답변이 돌아오지 않을까. 

일산의 랜드마크, 이웃들의 쉼터 

일산 주민들에게 일산호수공원이 갖는 의미는 뭘까. 1996년 일산호수공원이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어느덧 스물 다섯 살이다. 일산은 아파트만으로 도시 하나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해 준 1기 신도시의 대표주자다. 초기 입주민들에게 공원길을 따라가면 나타나는 호수공원은 참 신기하면서도 고마운 존재였다. 호수공원은 이내 일산신도시를 상징하는 랜드마크가 됐고, 한편으로는 아직 정 붙일 곳을 찾지 못하던 이들을 다독여주는 편안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강산이 두 번 넘게 변한 지금도 일산호수공원은 고양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 첫손가락에 꼽힌다. 드넓게 펼쳐진 호수를 둘러싼 녹지와 산책로, 아기자기하게 배치된 테마공간과 휴게시설, 고요한 수면 위로 빌딩들이 그림자를 드리운 풍광을 누군들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일산호수공원도 조성 초기에는 풍경이 듬성듬성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늘었던 나무둥걸이 아름드리로 굵어지고, 하늘을 가릴 듯 자란 상수리나무들은 가을마다 무수한 도토리를 낙엽 위에 떨군다. 호수공원의 자연이 한 해 한 해 풍성하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건 고양시민만이 누리는 행복이다.  

재미있는 인공호, 편안한 자연호 

일산호수공원은 월파정을 중심으로 동쪽으로는 인공호, 서쪽으로는 자연호로 구분한다. 여기서의 자연호는 원래부터 있었던 호수라는 뜻이 아니라, 침수식물과 수서생물, 물고기 등 습지 생태계가 살아있도록 관리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반면 인공호 구간은 어디까지나 방문자들에게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관리된다. 따라서 인공호, 자연호라는 무미건조한 이름보다는 경관호수, 생태호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공호와 자연호는 일산호수공원의 복합적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공호는 방문자들에게 인위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주변에는 고양꽃전시관과 고양600년기념관, 플라워북카페, 호수공원작은도서관 등의 전시·문화공간이 자리하고 있고, 호숫가에도 주제광장과 한울광장, 수상선착장 등의 공간이 이어져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리곤 했다. 종합안내소와 매점 등 편의시설 역시 인공호 주변에 배치됐다. 

반면 자연호 주변에서는 자연 그 자체가 제공하는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만날 수 있다. 전통정원과 약초섬, 작은동물원, 회화나무광장, 아랫말산, 자연학습원 등이 차례로 등장하고, 무엇보다도 녹지 산책로와 수변 데크를 걸으며 도심 속에서 우리와 함께 공존하는 자연의 친구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일산호수공원의 구조를 남서측과 북동측으로 나눠볼 수도 있다. 호수공원의 북동측은 호수로를 경계로 도심과 접해 있어서 주차장과 진입로, 각종 건물과 시설이 모두 이쪽에 몰려 있다. 반대로 농수로를 경계로 장항동 농경지와 접한 호수 건너 남서측은 다채로운 수종으로 구성된 숲과 산책로가 이어져 상대적으로 조용한 휴식을 누리려는 이들이 선호한다. 하지만 앞으로 CJ라이브시티, 일산테크노밸리, 장항행복주택 등의 개발공사가 진행되면, 호수 남서측은 아마도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높다.  

마을제사 올렸던 아랫말산 회화나무 

일산호수공원에서 인공호수가 조성되기 이전을 모습을 짐작할 수 있는 장소는 두 군데가 남아있다. 하나는 자연호 남동쪽의 아랫말산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정원 부근의 회화나무광장이다. 
아랫말산은 과거 주엽리(注葉里) 아랫말인 하주(下注)마을이 자리하고 있었던 작은 언덕이다. 옛 모습을 기억하는 토박이들은 가을날 아랫말산에 올라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황금빛 들녘이 장관이었고, 지금의 자연호수 자리에 있었던 작은 웅덩이에서 물장구를 쳤었다고 말한다. 아랫말산 입구에는 과거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마을제사(洞祭)가 올려졌던 회화나무가 남다른 풍채를 자랑하며 서 있다. 

아랫말산 회화나무.
아랫말산 회화나무.

회화나무광장의 회화나무는 신도시 택지조성 과정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옛 주엽마을의 수호목이다. 수직으로 뻗은 아랫말산 회화나무와는 달리 탁 트인 광장에서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풍경을 독점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홀로 살아남은 존재의 쓸쓸함이 느껴지는 것도 같다.

호수공원 회화나무는 작년 봄 때아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깃털모양이 아름다운 여름철새 후투티가 호수공원 회화나무 구멍에 둥지를 튼 모습을 포착하러 전국의 탐조사진작가들이 너도나도 호수공원으로 몰려왔기 때문이다. 사실 후투티는 그렇게 희귀한 새가 아닌데도, 사진작가들이 그렇게 유난을 떤 데에는 아무래도 일산호수공원과 회화나무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진의 배경이 됐기 때문이리라.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았던 회화나무광장 회화나무.
사진작가들을 불러모았던 회화나무광장 회화나무.

다양한 축제와 취미활동의 배경

일산호수공원이 멋진 배경 역할을 하는 경우는 너무도 많다. 고양을 대표하는 축제인 고양국제꽃박람회, 대한민국의 대표 거리극축제 중 하나로 성장한 고양호수예술축제, 예술성과 대중성이 만나는 국제조각전시회와 야외미술전 등의 문화예술 이벤트 역시 일산호수공원이라는 공간적 매리트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대형 행사만이 아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사적 모임들이 어려워졌지만, 걷기와 달리기, 체조, 사진, 그림 등 호수공원을 교실 삼아 진행된 동호인과 취미동아리들의 종류는 일일이 손꼽기 어려울 정도다. 인적이 한가한 곳에서 삼삼오오 둘러앉아 통기타와 오카리나, 우쿨렐레 등을 연주하는 이들의 모습도 정겨운 풍경이었다. 

조각작품이 전시된 노래하는분수대 주변 잔디밭.
조각작품이 전시된 노래하는분수대 주변 잔디밭.

우아해서 더 애틋한 단정학 한 쌍

흥미롭게도 일산호수공원에는 중국의 여러 도시에서 보내온 기념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1990년대 후반, 고양국제꽃박람회를 시작한 고양시는 해외의 여러 도시들과 적극적으로 결연을 맺는다. 아랫말산 입구의 돌사자상, 넝쿨터널 옆의 학괴정(鶴槐亭) 등이 당시에 중국 하빈시, 치치하얼시 등에서 우정의 표시로 보내온 선물들이다. 

중국 빈주시에서 고양시와의 결연을 기념해 선물한 아랫말산 입구 돌사자상. 
중국 빈주시에서 고양시와의 결연을 기념해 선물한 아랫말산 입구 돌사자상. 

그 중 가장 유명한 선물은 작은동물원에서 만날 수 있는 단정학(두루미) 한 쌍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지금의 단정학들은 20년 전 중국에서 온 녀석들이 수명을 다한 후 다른 동물원에서 새롭게 이주해 온 개체들이다.

초기에는 고고하고 아름다운 단정학이 살고 있다는 사실은 호수공원과 일산 주민들의 자랑이었다. 하지만 동물복지 개념이 확산된 오늘날 호수공원 단정학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속내는 조금 복잡해졌다. 대형 조류를 천장이 낮은 우리 안에 가둬두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이다.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감수성이 달라진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정학들은 오늘도 긴 다리로 둥지 안을 고요히 서성거린다.  

문화·관광의 거리, 차별화된 해법은?

호수누리길은 노래하는분수대 광장을 지나 주엽공원으로 이어진다. 가로 세로 이어진 녹지공원이 바람길을 터 주고, 놀이터와 휴식공간을 만들어주는 덕분에 일산신도시는 어마어마한 아파트밀집지역이면서도 주거환경이 좋은 녹색도시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라페스타와 웨스턴돔은 일산을 상징하는 쇼핑 스트리트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식당가와 패션 스토어들이 경쟁하듯 모여있다. 하지만 이 거리들을 고양을 대표하는 문화의 거리, 관광의 명소라고 부를만한 차별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일산에선 라페스타, 웨스턴돔, 원마운트, 일산가로수길 등 새로운 쇼핑스트리트가 문을 열 때마다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동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어서, 대부분의 상가들이 생존의 자구책을 고민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각각의 거리마다 특징과 매력을 차별화하는 방안이 과연 있을까. 기자가 걱정한다고 해답이 나올 리 없다. 

오래간만에 웨스턴돔 맛집 중 한 곳을 골라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기며 호수누리길 나들이를 마무리해야겠다. 어느 집을 찾아 어떤 메뉴를 주문해볼까? 행복한 선택의 시간이다.  

※ 이번 기사에서는 코스의 특성상 기사 말미에 첨부됐던 걷기정보를 따로 싣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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