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환 고양시장이 지난 10월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의 시정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동환 고양시장이 지난 10월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의 시정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고양시 예산규모 수원 앞질러
최근 5년, 2조→3조원 증가
‘재정자립도’ 정치적으로 활용
특정 사업 없애려는 수단인가

[고양신문] 이동환 시장이 취임하고 넉 달째를 맞고 있는 고양시는 내년도 본예산을 편성하는 작업이 현재 분주히 진행 중이다. 고양시가 예산편성에 있어 가장 고려하고 있는 부분은 낮은 재정자립도를 극복하기 위한 ‘비용 감축’이다. 이동환 시장은 각 부서에 예산 내에서 약 10%의 비용을 감축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인수위 백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인수위는 고양시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가장 심각한 현안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예산 내에서 비용 10%를 감축하는 특단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고양시의 시정운영 방침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재정자립도와 비용감축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주장이다. 재정자립도는 기본적으로 세입의 문제이기 때문에 세입구조를 조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세출을 줄인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재정자립도는 전체 세입 중 고양시가 자체적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지방세+세외수입)’의 비율을 뜻한다.

이동환 시장은 후보시절부터 고양시의 낮은 재정자립도를 문제 삼고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일각에서는 고양시의 재정구조를 정치적 도구로 활용해 기존사업을 폐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재정자립도’가 특정사업을 없애기 위한 정치적 구호로 활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고양시의 재정상황은 정말 심각한 수준일까? 그렇지 않다. 최근 5년간의 고양시 재정규모를 살펴보면 의외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고양시 예산은 5년 사이 약 2조원에서 3조원으로 정확히 1조원이나 늘었다. 갑자기 ‘부자 도시’가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낮은 재정자립도’는 ‘가난한 지자체’, ‘쓸 돈이 부족하다’라는 인식을 갖게 한다. 하지만 고양시의 전체 예산규모는 해마다 급속도로 증가했다. 증가율만 보면 전국 대도시 중 단연 1위다. 5년 전엔 수원과 용인에 못 미쳤지만, 지금은 인구가 더 많은 수원을 따라잡았다.<그래프1 참고>. 
 

쉽게 얘기하면 5년 전과 비교해 고양시는 1조원을 고양시민들에게 더  많이 쓰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도 ‘비용 감축’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고양시의 재정자립도는 하락했을까? 그 말은 사실이다. 고양시의 재정자립도는 5년 전 42%에서 현재 33%까지 하락했다. 재정자립도에 변화가 있었다면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이 ‘변화를 만든 요인’이다. 

만약 고양시의 자체수입(자주재원)이 하락해서 재정자립도가 떨어졌다면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야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고양시의 자체수입은 타도시와 비슷한 수준으로 지금도 매년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자체수입의 가장 큰 부분이 ‘재산세’와 ‘지방소득세’이기 때문에 부동산가격과 소득 증가분만큼 해마다 오르고 있다. 

고양시의 재정자립도가 하락한 진짜 이유는 국가로부터 돈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고양시는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자체재원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아졌고 결과적으로 재정자립도가 낮아졌지만, 예산규모는 크게 늘었다<그래프2 참고>. 고양시의 자주재원에 특별히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만큼 시민들에게 쓰이는 예산이 늘었다는 측면에서 사실 매우 긍정적인 상황인 것이다. 

다시 말해 고양시는 중앙정부의 도움을 받아 예산 규모가 커졌기 때문에 재정자립도는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자주재원이 감소하는 일이 벌어졌다면, 큰 위기로 받아들이고 그에 맞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겠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물론 장기적으로 자주재원을 늘리기 위해 기업을 유치하고 산업부지를 늘리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만, 지금 당장 ‘재정자립도’를 핑계로 ‘예산을 감축해야한 한다’는 말은 동의하기 힘든 점이 많다. 

이동환 시장의 예산감축 주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신청사(시청) 건립 축소’다. 이 시장은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예산을 아껴야 한다”면서, 처음에는 신청사 건립을 ‘민자사업’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가 그것이 행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뒤에는 ‘축소해서 단계적으로 짓겠다’라고 말을 바꿨다. 당시 관련 토론회에 참가했던 시의원과 주민들은 시의 이런 계획에 “고양시가 신청사 지을 만한 돈도 없는 그런 도시는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동환 시장 취임 이후 기존사업을 중단시키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공공기관 통폐합을 통한 기능축소, 주민자치사업 축소, 복지예산 축소, 도시재생·주민공동체사업 축소, 각종 임대주택사업 축소, 민간단체 보조금 축소 등 많은 사업들에 제동을 걸었지만, 그 돈을 아껴 어디다 쓰겠다는 말은 나오지 않고 ‘효율적 재정운영’이라는 모호한 표현만 되풀이하고 있다. 예산을 감축하라는 지시만 내려졌을 뿐 남는 돈을 어디다 쓸지 정하질 못했다는 뜻이다. 보통 이럴 경우 부서 공무원들은 특정 사업 1~2개를 없애고 남은 돈은 기존사업에 조금씩 쪼개서 나눠주는 것으로 쉽게 일을 끝낼 가능성이 높다. 

공공재정 전문가인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한 개의 사업을 통으로 없애고 그 예산을 다른 사업에 과대편성하는 것은 예산으로 분식회계를 하는 것과 같다”며 “예산운영에서 가장 안 좋은 사례지만 여러 지방정부에서 이런 일들이 목격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규사업을 하겠다는 확실한 목표 없이, 무턱대고 예산을 줄이라는 것은 정치적 탄압으로 비쳐질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동환 시장의 인수위 백서에는 민간단체 보조금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며, 서울시 오세훈 시장의 예산삭감(21년도 832억원 삭감)을 ‘좋은 예’로 들었다. 시민사회로 가는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것인데, 고양시가 낮은 재정자립도 때문에 지출을 줄여야 한다면서, 실제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기술을 모방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해볼 대목이다. 김상철 연구원은 “지방재정 용어인 ‘재정자립도’라는 말이 정치적 구호가 돼서는 안 된다”며 “그 구호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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