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아끼기보단 잘 써야
지출 줄인다고 수입 느나?
기업경영 아닌 시정운영해야

[고양신문] 고양시의 최근 5년간의 예산규모와 세입항목을 살펴본 지방재정 전문가는 ‘강도 높게 지출 구조조정을 추진한다’는 고양시의 목표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정자립도 하락’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로 각종 예산사업을 입맛에 맞게 재단하려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25일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을 만나 고양시 재정 현황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봤다.


 최근 5년간 고양시의 재정현황과 재정자립도에 대해 총평한다면.

5년간 약 1조원이 늘었으니 재정규모가 상당히 큰 폭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앙정부의 지원으로 예산이 늘었기 때문에 재정자립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지만, 자주재원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이유는 없다.


 고양시의 예산 규모가 갑자기 줄어들 가능성도 있나.

국가지원금인 지방교부세와 조정교부금, 보조금 등이 줄어들어야 세입이 축소되는데, 그럴 가능성은 적다. 전체 예산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보조금(22년 기준 고양시 전체 예산의 32.3%)은 중장기적인 계획을 통해서 짜여진다. 기재부 평가로 사라지는 사업도 있지만 5~10% 수준에 그친다. 갑자기 예산이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또한 고양시가 향후 몇 년 사이 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의 지원을 받지 않는 ‘불교부단체’가 될 가능성도 상당히 낮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


 재정자립도는 고양시뿐 아니라 타 도시들도 해마다 떨어지는 추세다. 이유는.

국가차원의 보조금 사업이 대체로 많이 늘었기 때문이다. 복지와 교육관련 사업이 강화되면서 모든 지자체에 국고보조금이 더 많이 지원되고 있다. 그러면 자연히 지자체의 재정자립도는 떨어지게 된다. 고양시 사례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전국적인 현상이다.


 고양시는 재정자립도가 낮기 때문에 예산 지출을 줄이겠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지출을 줄인다고 수입이 늘어나진 않는다. 지출구조를 개선해서 가용예산을 만들어 낸다면 맞는 말이다. 


❙ 재정자립도를 중요한 지표로 보는 이유는 무엇인가.

자체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용예산이 얼마나 되는지다. 가용예산은 도시의 자체수입원인 지방세와 세외수입 외에도 정부로부터 받는 지방교부세가 포함된다. 이런 항목을 더하면 ‘재정자주도’를 알 수 있는데, 이게 높아야 각 지자체가 주도하는 자체사업을 스스로 할 수 있다. 


❙ 재정자립도와 재정자주도를 비슷하게 이해하면 되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재정자립도 항목에는 빠져있는 ‘지방교부세’는 재정자주도 지표에 포함된다. 즉 재량예산이다. 또한 요즘엔 보조금 사업도 사실상 재량예산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고양시도 정부 공모사업을 통해 국비를 지원받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사업은 지자체가 원해서 하는 재량사업으로 봐야 한다. 즉 재정자립도에는 포함되지 않는 보조금 사업의 다수와 지방교부세를 합치면, 실제 ‘재정자주도’는 지자체의 역량에 따라 더욱 올라갈 수 있다. 이렇듯 재정자립도가 낮아도 재정자주도가 높은 경우도 있다. 재정자립도가 낮다고 걱정할 것이 아니라 재정자주도를 높이는 방향을 고민해봐야 한다.


❙ 재정자립도를 올리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단기적으로는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덜 받으면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이다. 정부지원 사업을 안 하겠다고 하면 된다. 또 하나는 고양시가 증세를 하거나 각종 사용료(과태료)를 올리면 된다. 예를 들어 주민세와 쓰레기봉투 값을 올리고 상하수도 사용료를 더 받으면 된다. 하지만 여기엔 저항도 따르고 한계도 분명하다. 

장기적인 해결책은 도시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기업을 많이 유치하면 지방소득세가 올라가면서 재정자립도가 향상되는데,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움이 따른다. 도시의 체질을 개편하는 것은 수십 년의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때에 따라선 법률개정(국회)과 중앙정부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하다. 


 지출을 줄이고 돈을 남기는 것이 좋은 예산편성일까.

지자체를 기업운영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 예산 지출을 아낄 이유는 없다. 기업경영의 원리와 지방정부의 예산운영은 완전히 다르다. 지방정부는 벌어들인 만큼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예산을 남길 이유가 없다. 정부가 금융업을 하는 게 아니지 않나. 해마다 시민을 위해 다 써야 한다. 아껴 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쓰는 것’이 중요하다. 
 

  고양시는 같은 1기 신도시인 성남과 많이 비교된다. 재정자립도도 마찬가지인데.

성남은 전국 지자체에서 서울본청을 제외하면 재정자립도 1위 도시다. 서울의 강남구와 서초구도 성남 아래다. 반면 고양시는 지리적으로 경기북부에 있다. 경기북부와 남부는 인프라 측면에서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 자체의 문제라기보단 지리적 위치에 따른 국가적 발전 전략, 법률적 개발제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고양시는 경기북부권에서는 재정자립도가 최상위권에 있다.
 

  재정자립도 등의 예산 지표가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나.

그럴 여지가 충분하다. 재정 전문가 입장에서 볼때 정치적 목적을 이유로 재정운영 방향을 바꾸는 것은 가장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사업을 자의적으로 평가해서 재정적으로 압박하고 괴롭히려 한다. 요즘 보면 중앙정부는 물론 지방정부에서도 그런 사례가 자주 발견된다. 차라리 ‘나는 이런 사업 싫어해’라고 솔직하게 얘기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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