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고양시 국회의원·총선 톺아보기⑤
▶2000년 제16대 총선

덕양갑 곽치영, 덕양을 이근진, 일산갑 정범구, 일산을 김덕배

DJ, 국정 후반기 조준 ‘새천년민주당’ 창당
자민련과 선거연대 불발, 한나라당 1당 차지
민주당, 영입인사-지역정치인 나란히 공천
국회 동반 입성, 고양 재선은 하나같이 실패 

1997년 12월 일산 자택에서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는 김대중 대통령. 16대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인사들을 영입하며 '새천년민주당'으로 진영을 재편했다. 
1997년 12월 일산 자택에서 대통령 당선 인사를 하는 김대중 대통령. 16대 총선을 앞두고 다양한 인사들을 영입하며 '새천년민주당'으로 진영을 재편했다. 

[고양신문] 2000년 4월 치러진 16대 총선은 20세기 마지막 총선일까, 아니면 21세기 첫 총선일까? 엄밀히 말해 2000년까지가 20세기인 게 맞지만, 맨 앞자리 숫자가 2로 바뀐 이상 정서적으로 ‘새로운 밀레니엄이 시작됐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며 사상 처음 민주당계 여당이 된 김대중 정부와 새정치국민회의는 IMF 외환위기 극복에 임기 전반기를 소진했다. 이제는 후반기의 주도적 국정 운영을 위해 16대 총선 승리가 절실했다. 우선은 여당의 프리미엄을 십분 활용해 세력을 확대하고 새로운 얼굴들을 영입한 후 ‘새천년민주당’이라는 간판을 새롭게 내걸었다. 각계 전문가와 유명인사가 여당에 대거 영입됐고, 향후 오래도록 한국 정계의 주류로 자리매김한 386민주화운동 세대 다수가 정치에 발을 들였다.

문제는 정권 창출의 공동지분을 갖고 있는 DJP연립정부의 운항이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정 초기부터 삐걱거리는 조짐을 보이더니, 결국 새천년민주당과 자유민주연합은 16대 총선 선거연대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제각각 독자적인 후보를 내는 상황을 맞았다. 

여기에 맞서는 한나라당은 1997년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추스르고, 이회창 총재 중심으로 당을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임기 말 IMF 책임론에 휩싸여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김영삼계는 당의 주류에서 밀려났다.   

선거를 앞둔 김대중 정부는 또 하나의 승부수를 던졌다. 바로 선거 3일 전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발표한 것. 여당은 이 발표가 선거 막판의 호재가 되길 기대했지만, 한나라당은 ‘총선용 신 북풍’이라고 정부를 공격하며 보수표 결집을 호소했다.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수습한 한나라당은 16대 총선에서 신승을 거뒀다. 
이회창 총재를 중심으로 대선 패배의 후유증을 수습한 한나라당은 16대 총선에서 신승을 거뒀다. 

DJP 선거연대 불발, 승자는 한나라당

개표 결과 DJP 선거연대 불발은 결정적인 패착이 됐고, 남북정상회담 발표 역시 여권의 총선 승리를 견인해내지 못했다. 115석을 얻은 새천년민주당은 자민련과의 공조 불발로 20여 석을 야당에 헌납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내놨고, 17석을 얻은 자민련은 경북과 충청의 보수성향 지지자들의 표심이 한나라당으로 이동하며 의석수가 3분의 1로 줄어버렸다. 반면, 이변 없이 영남을 싹쓸이하고 수도권에서 선전한 한나라당은 133석을 얻어 여유 있는 1당이 됐고, 3년 전 대선에서 석패했던 이회창 총재도 재도전의 디딤돌을 든든히 마련했다.  

16대 총선은 득표율 2% 이내에서 당락이 결정된 초접전 지역이 무더기로 쏟아졌는데, 결과는 대부분 한나라당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됐다. 선거전 막판 남북정상회담 발표가 어느 쪽 지지층을 더 결집시켰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16대 총선과 관련한 흥미로운 점들을 몇 가지 짚어보면, 우선 의석수가 273석으로 줄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모두가 몸집을 줄이는 분위기를 감안해 국회의원 숫자도 26석을 감축한 것이다. 물론 의석수는 17대 총선에서 다시 299석으로 돌아온다. 두 번째는 역대급 낮은 투표율이다. IMF 현실을 버텨내기도 힘겨웠던 서민들의 정치 무관심이 57.2%의 낮은 투표율로 표출됐다. 보수-진보 양 진영의 적극 지지층만이 결집해 치른 선거였던 셈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의 전례 없는 낙천·낙선운동이 16대 총선에서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워 철새정치인들을 비롯해 함량 미달 후보들을 솎아내는 작업을 펼쳤는데, 유의미한 결과를 이끌어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뜨겁게 불붙었던 국회의원 부적격자 낙천·낙선운동.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뜨겁게 불붙었던 국회의원 부적격자 낙천·낙선운동. 

새천년민주당, 고양 4개 선거구 싹쓸이

고양의 선거 이야기를 살펴보자. 4년 사이 고양시 인구는 폭발적으로 늘어 80만 명을 돌파했고, 선거구는 덕양갑-을, 일산갑-을 무려 4개가 됐다. 고양은 신도시 개발 전과 후가 전혀 다른, 대한민국에서 가장 극명한 단절과 변화를 보여주는 도시가 됐고, 이는 정치성향의 극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오래도록 보수의 텃밭이었던 표심은 앞선 15대 총선부터 달라지는 조짐을 보이더니, 2000년 16대 총선에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드러냈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16대 총선은 새천년민주당이 결코 선전한 선거가 아니었지만, 고양시에서는 덕양갑 곽치영, 덕양을 이근진, 일산갑 정범구, 일산을 김덕배 등 4개 선거구 전체 새천년민주당 후보들이 차지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고양이 진보진영 강세지역이라는 이미지가 시작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러한 결과는 유권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신도시 입주민들이 대부분 진보성향을 갖는 젊은 층 고학력자들이고, 주로 은평·서대문·강서 등 전통적인 진보 벨트를 형성해온 지역에서 이주해왔다는 사실에서 어느 정도 예측된 결과였다.

2000년 4월 15일자 고양신문에 실린 16대 총선 당선인 사진. 
2000년 4월 15일자 고양신문에 실린 16대 총선 당선인 사진. 

여기에 저명한 영입 인사와 지역출신 인물을 조화롭게 내세운 공천전략도 새천년민주당의 완승에 한몫했다는 평가다. 김대중 정부의 모토였던 ‘인터넷 강국’의 장본인 곽치영 데이콤 사장, 대통령후보 합동토론회 명사회자로 한창 주가가 높던 정범구 후보가 덕양과 일산에서 나란히 새인물 바람을 일으켰고, 여기에 이근진·김덕배 등 지역에 뿌리를 둔 인물들이 균형의 파트너가 됐다.

반면 고양갑 이국헌, 고양을 김용수, 일산갑 오양순, 일산을 홍기훈 등 고양시 4개 선거구에 나섰던 한나라당 후보들은 모두 적잖은 표차로 2위에 머물며 완패했다. 

‘IT강국’ 아이콘, 데이콤 사장 출신 곽치영

덕양갑에서 당선된 곽치영 의원은 지금까지 고양의 유권자들이 만나보지 못했던 정치인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연구기관을 거쳐 당대 최고의 정보통신기업인 데이콤 사장까지 오른 화려한 스펙을 자랑했다. 말 그대로 ‘외부 인사 전략공천’이라는 말이 뭔지를 처음으로 실감하게 해줬다.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IT강국’을 표방했던 김대중 정부의 방향과 맞물려 날로 커져만 가고 있었다. 이러한 관심을 배경으로 인기를 얻었던 PC통신 천리안, 국제전화 002 등이 데이콤의 히트상품들이었다. 이를 활용해 곽치영 후보의 홍보물에는 ‘터치터치 곽치영’ ‘002만든 곽치영 이번에는 2번’ ‘천리안 만든 곽치영 덕양발전 훤히 보입니다’ 등의 문구가 등장하기도 했다. 또한 “고양을 통일한국 수도로, 정보화신도시로 만들라는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왔다”는 말로 신도시 주민들의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이와 관련해 △대규모 정보통신기지 건립 △벤처지원센터 건립 △한국형 실리콘밸리 조성 등의 공약도 제시했다.

곽치영의 도전을 누르고 재선을 꿈꿨던 이국헌 현역 의원은 15대 국회에서의 성실한 의정활동을 내세우며 “이국헌이 재선되면 고양이 크게 일어납니다”라고 호소했지만, 유권자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이 의원은 정치인들의 잦은 당적변경에 대한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듯 ‘탈당금지를 위한 선거부정방지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꼼꼼한 지역맞춤 공약 내건 토박이 이근진

고양을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은 이근진 의원은 고양시 출신으로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25년간 기업을 흑자경영으로 이끌었고, 사재를 털어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는 ‘희생과 봉사의 정치인’임을 내세웠다.

공약을 살펴보면 △행신역을 고속철도 간이승강장이 아닌 시발역으로 △신공항고속도로 연결도로 신설 △성사천·가라뫼지역 개보수 추진 △노후도심 재개발 △경의선 복선화와 교외선 활성화 △그린벨트의 효율적 해제 △창릉천 정화 및 시민공원화 등 꼼꼼한 지역맞춤 공약들이 열거됐고, 당선인 스스로도 “철저하게 청책 위주의 선거캠페인을 펼쳤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용수 후보는 민주당 원내정책실장으로 정계에 발을 들인 후 한나라당에 합류한 뒤 이회창 총재가 주도한 ‘3김 청산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북한산조경 대표인 자민련 문기수 후보는 반공연맹, 자유총연맹, 민주평통, 바르게살기운동본부, 새마을협의회, 대한적십자사 등 고양지역의 거의 모든 단체에 이름을 걸고 있을만큼 지역밀착이 강한 후보였으나 중앙정치 진출까지는 역부족이었다.   

‘유권자와 함께 만드는 정치’ 강조한 정범구

일산갑에서 당선된 정범구 의원 역시 선거를 앞두고 고양으로 낙점된 유명인사였다. 충북 음성 출신으로 YMCA 활동을 하다 독일에서 정치학박사를 받고 돌아와 CBS시사프로그램을 맡고 있던 그는 1997년 대선에서 사상 최초로 진행된 ‘대통령후보 합동 TV토론회’의 사회자로 활약하며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었다.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간판 영입 인사 중 한 명이었던 그가 어디에 공천받을 것인가가 관심사였는데, 결론은 일산에서 경기북부의 새로운 정치 바람을 견인해달라는 요청이었다.

특이하게도 정범구 의원의 홍보물에는 개발이나 교통공약이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상대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선거전을 거부했다. 대신 “정범구는 혼자 하지 않고, 유권자와 함께 만드는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을 반복해서 강조했다. △지역을 위한 정책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산가꾸미 100인 시민위원회’ △매달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는 ‘호수 여론광장’ △정범구가 사회를 보는 ‘시민토론회’ △일산에 거주하는 교수언론인들이 정치개혁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가포럼 등이 그가 제시한 ‘소통의 정치’ 모델들이었다. 

15대 전국구 국회의원(신한국당) 출신인 한나라당 오양순 후보는 약사 출신으로 15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 활동했다. ‘당찬 일꾼 활기찬 일산’을 구호로 내걸고 녹색전원도시 일산을 완성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지만 2위에 머물렀다. 

사실 일산의 터줏대감은 고양에서만 내리 3선을 한 이택석 현역의원었다. 하지만 16대 총선에서는 1, 2등과 큰 표차의 3위로 밀려버렸다. 각각 신민주공화당-민자당-신한국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던 이택석 의원은 포천의 이한동 의원과 함께 1998년 한나라당을 동반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하며 부총재까지 올랐지만, 총선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며 시대의 변화를 실감해야 했다.

‘지역출신 큰 정치인’ 기대 모았던 김덕배

고양정에 당선된 김덕배 의원은 고양청년회의소(JC) 회장 출신으로 한국JC 중앙회장까지 올라 일찍부터 폭넓은 기대를 모았던 지역출신 정치인이다. 15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임창열 경기도지사를 보좌해 정무부지사를 지내며 행정경험을 쌓은 그는 ‘우린 믿어요 김덕배’ ‘일산에서 태어나 일산의 변화를 지켜본 사람’이라는 구호로 토박이 유권자들과의 각별한 친밀감을 강조했다.

김덕배 후보가 내세운 공약으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을 수도권발전법으로 대체 입법 △개발제한구역 합리적 완화 △지식정보사업 벨트 구성 등이 있다. 특히 △일산대교 조기 건설 △탄현간이역 완공 및 풍산간이역 추진 △탄현·대화도서관 조기 건립 △송산배수펌프장 조기 신설 등의 공약에서는 신도시가 조성되고 수년이 지나도록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는 각종 기반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답답함이 느껴진다. 

이에 맞서 야권에서는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긴 홍기훈 후보, 김두관 남해군수의 동생 김두수 민주노동당 후보가 출마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4명 모두 1회로 끝난 고양에서의 의원활동 

하지만 16대 총선이 배출한 고양시의 새천년민주당 초선의원 4명은 하나같이 고양에서 또다시 배지를 달지 못했다. 이유는 제각각이었다. 

고양갑 곽치영 의원은 총선 과정에서의 선거법위반 혐의가 당선 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50만원으로 결론이 나며 2002년 의원직을 상실했다. 공석이 된 고양갑 보궐선거는 2003년 치러졌고, 재도전에 나선 이국헌·문기수 후보를 꺾고 개혁국민당 유시민 의원이 당선됐다.   

고양을 이근진 의원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으로 당적을 옮겼지만, 2004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김용수 지구당위원장에게 패배하며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대한민국 만세!,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부르는 장면이 뉴스 영상을 타며 강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일산갑 정범구 의원은 2003년 새천년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이 분당되는 상황에서 신당을 따라가지 않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후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중구에 출마했다가 나경원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지만, 2009년 고향인 충북 음성·진천·증평·괴산군 재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당선돼 재선의원이 됐다. 문재인정부에서는 주독일 특명전권대사를 지냈다. 

일산을 김덕배 의원 역시 의원 경력은 초선에서 멈췄다. 당선 후 중소기업특위 위원장을 역임했고 민주당의 외곽 청년조직인 연청(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을 주도적으로 이끌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DJ와 정치적 운명을 같이했던 김 의원의 행보가 열린우리당 주류세력과 갈등을 빚으며 2004년 총선에 불출마했다. 

오랫동안 변화의 중심에서 동떨어져 있던 고양시는 2000년대 이후 요동치는 정치권의 지형을 가장 빨리 반영하는 지역이 됐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덕양갑-을 출마자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덕양갑-을 출마자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일산갑-을 출마자들.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일산갑-을 출마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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